전쟁사 이야기 3편 - 새로움과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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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시험에 ‘신유형’이라는 이름으로 수험생들의 멘탈을 흔들어 제끼는 문제가 출제됩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풀이와 관점을 요구하는 충격적인 문제들은 곧바로 그 이후에 출제되는 모의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평가원 모의고사 중에서도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문제들은 그 이후의 모의고사에 정형화되어 등장합니다.
당장 국어나 수학, 과탐 기출을 보면 과거에 비해 지금의 문제는 훨씬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졌습니다. 학생들이 기출문제를 통해 꾸준히 단련되었기 때문에, 과거 수능 수험생들의 혼을 빼놓은 문제도 지금은 아주 익숙하고 쉽게 풀립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레 상향평준화되기 때문에 출제자들은 새로운 임팩트를 고민합니다.
전쟁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나라가 전쟁에서 전혀 새로운 병기나 전략을 꺼내들면 상대국은 처음에는 충격과 공포에 박살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유행을 타고 여러 가지 적절한 파훼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한때 새로웠던 것은 익숙한 것으로 사람들이 적응하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처음 개전했을 때, 지휘관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쟁양상에 놀라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단기간의 공격적인 전략 중심이었으나, 참호와 기관총의 등장으로 전쟁은 지독한 지구전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일반 보병으로는 튼튼하게 무장한 적의 참호를 쉽게 점령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군의 참호를 뚫기 위해 영국군 출제자들은 신유형의 문제를 개발합니다. 바로 세계최초의 ‘전차’였습니다.
튼튼한 장갑으로 무장한 전차 적의 참호를 돌파하는데 획기적인 접근이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탱크는 이것을 본 독일군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아니, 저걸 어떻게 대처하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병기는 독일군 학생들에게 충분한 공포심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탱크는 속력도 느릴뿐더러 전략적 운용면에서 아주 미숙했기 때문에, 곧 성실한 독일군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략당합니다.
(세계 최초의 영국 전차 마크 1. 처음에는 충격과 공포를 주는 신유형 문제였으나 곧 독일군 학생들은 적절한 알고리즘으로 대처하기 시작한다
출처 wikiwand
http://www.wikiwand.com/ko/%EC%A0%84%EC%B0%A8)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프랑스를 침공하려던 독일군은 매우 큰 장애물 앞에서 주춤합니다. 당시 프랑스는 어마어마한 자원을 쏟아부어 세계 최강의 방어선으로 불리던 ‘마지노선’을 구축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물론 프랑스, 영국 등 당시 각국의 수뇌부들은 아무도 저렇게 튼튼한 요새를 뚫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프랑스를 침공해야할까? 독일군 수뇌부는 고민에 빠지고, 그 와중에 획기적인 작전이 하나 기획됩니다. 바로 ‘전격전’이라 불리는 전략인데, 아직까지 어떤 국가에서도 전차와 항공기를 유기적으로 조합하여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을 섬멸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비록 전차는 1차 세계대전에 처음 등장했지만 전술적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지휘관들은 전차를 보조적으로만 취급했습니다.
독일군은 이러한 과거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깨고 획기적인 시도(라고 쓰고 도박이라 읽습니다)를 감행합니다. 전차를 보조적인 수단에서 집단적인 운용으로 발전시키고, 이에 더해 공수부대와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의 방어선을 관통한다는 작전입니다. 여태 그 누구도 실행해보지 못한 개념을 독일군은 한번 시도해보게 됩니다. 결과는?
(독일군 출제진의 신유형 ‘전격전’ 문제를 받고 멘탈이 털려 두손 두발 다 든 프랑스군 학생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9337&cid=59016&categoryId=59023)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전력이 밀고 들어오자 당시 프랑스를 지키던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충격에 빠집니다. 적이 오는 것을 정면에서 막아내줄 것이라고 믿었던 마지노선은 무쓸모로 전락해버리고, 멘탈이 터진 프랑스군 학생들은 제대로 문제를 풀어보지도 못하고 포기해버립니다. 영국군 학생 또한 필기구(병장기)를 전부 던지고 겨우 몸만 빠져나가서 본토로 후퇴합니다.(덩케르크 작전)
비슷한 시기에 태평양 전쟁에서도 두 학생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과 미국입니다. 세계 2차대전에서 전격전이 새로이 등장하며 전차에 대한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였듯이, 태평양 전쟁에서도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이전가지는 ‘거함거포주의’라 하여 엄청난 배수량을 바탕으로 매우 큰 함포를 갖춘 전함이 전쟁의 주역이었습니다. 서로 포탄을 주고받는 전투로 모든 승부가 결정났으며, 누가 크고 멋진 전함을 더 가지고 있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었습니다. 그러나 항공기의 발전과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거함거포주의’라는 유형은 구시대적 유물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시대가 급변하는 과정 속에서 미군은 ‘항공모함’이라는 신유형에 매우 감명을 받게 됩니다. 다름 아닌 본인들이 일본군의 기습적이고 불법적인 선빵에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진주만 공습)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일본군은 세계에서 가장 선구적인 항공모함 전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주요 교리는 여전히 거함거포주의였고, 전쟁이 종결될때까지 이 사상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거하게 기습을 맞은 미군은 곧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신들이 가진 대부분의 생산력을 항공모함에 쏟기 시작합니다.
미군은 일본군과 달리 항공모함이라는 신유형 문제에 매우 유연하게 대처하였으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해당 유형을 완벽하게 공략합니다. 당시 미 해군의 항공모함은 레이다 기술 발전과 뛰어난 전략을 바탕으로 명실상부 세계 1인자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이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실한 미군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과 달리 ‘항공모함’이라는 신유형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적응했다. 사진은 필리핀해 해전에서 미 전투 초계기들이 일본 전투기들을 요격하는 모습
https://forums.sufficientvelocity.com/threads/battle-of-the-philippine-sea.5024/)
거함거포주의라는 낡은 기출 문제지에 의존한 일본군 학생들은 결국 미군 학생들에게 성적이 따라잡히고 맙니다.
이번 편에서 소개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결국 상대평가라는 수능에서 남보다 살짝이라도 더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유형에 빠르게 적응해야 합니다. 대부분 학생들은 1년 중 가장 초창기 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정작 6,9평 이후 힘이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그 해의 수능에 나올 힌트를 놓치는 것입니다. 6평과 9평 이후 자신이 틀리거나 시간이 오래 끌린 문제를 유심히 관찰하여야 합니다. 6평과 9평은 수능의 예행연습이자 출제자들이 직접적으로 던져주는 힌트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기출문제는 최근 것부터 풀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오래된 기출은 풀어볼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되도록 최근 유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적응해야 합니다. 결국 신유형이라는 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적응하고 익숙하게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한발짜국만 더, 빨리 적응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6평이나 9평에서 자기 멘탈을 터뜨린 문제라고 해서 외면하면 안됩니다. 지금 당장 그 고통을 감수하고 조금만 더 적응하면, 적절한 알고리즘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나 일본군이나 동일하게 거함거포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운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직된 사고를 극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기존의 기득권도 반발할 것이며 새로운 시도로 인한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힘든 일을 미국은 스스로 해냈고 그 결과 일본을 앞지를 수 있었습니다.
전쟁사 시리즈(약 11편 예정)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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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반도 전쟁사가 들어가도 재밌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