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ro [91149] · MS 2005 · 쪽지

2012-11-17 10:26:08
조회수 14,080

수능을 끝내신 분들께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뒤늦게 지방대에서 명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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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지금 저는 대학교 4학년 휴학중인 학생입니다.


제가 오르비를 했을 당시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오르비는 7번이 넘께 바뀌었군요 ㅎ


수능 보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능이라는 산을 넘었을때 당시
저의 기분은 '허탈함,홀가분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어떠한 과정을 거쳐
수능을 뒤늦게 다시본 케이스입니다.


혹시 재수를 할지,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가야할지
갈등이 되시는 분들께 제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야기를
한분이라도 위안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인기글에 보니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는 글들이 많아서
제 주관적인 경험에 비추어 고3때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을


이야기하듯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고3때 남들보다 감성적인 방황을 많이 하여
물흘러가듯 수능시험을 보게 되었고
한 지방의 A 공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저는 이곳에 합격 (그것도 2월 말까지 가서 추가합격 )하고 나서도
입학할때부터 반수할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안할때가 더 힘들다고 .
고3때 열심히 하지 않은 댓가는 이곳에서도 치루어야 했었습니다.
막연한 힘든 고3생활에 대한 보상심리로 인해 저는 동아리 활동을 위주로 미친듯이 놀았고
대학에 들어가면 해봐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을 거의 다 해봤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다툼이 많아지고 용돈이 끊기자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참 다양하게
많이 했었습니다.


남들하는 학원이나 과외는 그저 남의 세계였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어린나이에 하다보니 조금은 사회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가 앞으로 사회속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할지 막연한 불안함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놀기도 하고, 많이 깨지기도 하면서
대학 졸업장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반수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A공대에서의 1학년이 끝났을때
전 공부는 거의 하나도 하지 않았고
정신없이 놀다보니 관성으로 인해서
반수할 생각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었습니다.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한심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겨울에 술에 취해 기숙사에 누워 잠이 들려고 했는데
불현듯  너무 두려운 감정과 후회가 들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동떨어져 낭만을 즐기고  감상에 빠지는  댓가는 가혹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그렇게 커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불안함은 나태에 대한 관성을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외적으로 그동안 이룬 것은 없었지만
그 날 이후로 전 속으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막연히 열정을 불태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열정을 연소시킬 대상은 A 공대에 남아
학과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공부가 아닌 다른 좋아하는 무언가가 될수도 있었지만



그해에 재수에 성공하여 의대에 입학한 친구와 만나
그 친구의 조언을 듣고
수능을 다시 치루기로 했습니다.


처음 공부를 할 당시 말그대로 수능공부는 수단이었습니다.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누군가 목을 조를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막상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졌고
행복한 상태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술과 1년이란 시간에 잊혀진 공부 뇌세포들을
 다시 복구하는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수능을 다시 볼때까지의 기간은
제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지금도 기억됩니다.


부모님께 비밀로 해야했기에 5월달까지 아르바이트로 모은돈을 가지고
5월 7일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매달 보는 모의고사에서
한번도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적은 없었고
9월경에 성적표들과 함께 부모님의 허락을 맡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지막 사설 모의고사때는 전국 200등안에 들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능은 그다지 잘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제가 이루고자 했던 (수능 최상위권 점수가 아닌)
바뀌고자 했던 욕구를 이루었기에
합격했던 대학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원점수로는 거의 50~80점 정도가 올랐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바닥이었던 자존감과 부족한 실천의식을
어느정도 회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이때의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내모습을 얻은데 벅찬 감격이 있었지
고3 당시 생각했던
명문대 타이틀이 주는 달콤함은 이상하게 들지 않았습니다.


 



지방대에 있던 친구들은 워낙 같이한 시간이 많아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데 그곳에 남아있어도
객관적으로도 저보다 지금 훌륭히 잘 살고 있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저는 뒤늦게 수능공부를 다시 하여 경험이란 큰 가치를 얻었지만
시간과 불확실성에 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지만 남들이 외부에서 인정하는
명문대라는 타이틀은 그냥 열심히 살았던 과정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좋은 환경에서 방황 한번 거치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갔던 모범생 친구들이
학교 에 입학하고 큰 방황을 하면서 감정적인 소모를 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물론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겠지만
어려서 목표를 확고하게 가진 사람이라도
너무나 복잡 다양한 세상속에 몸을 담그다보면
유동적으로 자신을 바꾸어야 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느낀 바는 ..



재수에 대한 확실한 당위성이 없다면 분명 재수는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충분히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하면서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고
저처럼 부딪히고 깨지면서? 얻는 경험은
감히 말하건데, 명문대 타이틀보다
인생 전반에 있어서 더 소중하다고 느껴집니다.


만일 제가 그당시처럼
미성숙한 정신을 가지고 명문대에 입학하였다면
개인적으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시험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 대학교 4학년까지 다닌 사람에게도
너무나 많이 있는데
주위의 시선에 익숙해져 내면의 가치가 아닌 외면의 가치에 중점을 맞춘
삶으로 굳어져 버릴지도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수능이 끝났으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설계할 것인지
어떤 전공을 가지고 싶은지 여행이라도 하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라고 하는 말들이 그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분명 대다수는 자신이 원했던 곳에 들어오고나서도
너무나 다른 환경을 마주치고 실망하고 후회하며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의대에 가길 그토록 원했던 친구가
적성에 맞지 않아
정신과 치료를 1년 넘게 받는 경우도 있었고


대학에 흥미를 두지 않았던 친구가
놀다보니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찾고
성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곧 성인이 되고
이제부터 인생은 누군가 길을 정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남들의 잣대에 자신을 맞춘다면 인생 전체가 흔들릴수도 있습니다.
저의 옛날 모습처럼요 ..
외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때입니다.



아무쪼록 성적표가 나올때까지
수험생만의 특권의 기간동안 많은 것을 누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명확한 답이 없어 두서 없는 긴글에
배신감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어느 한분께라도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바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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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rl Marx · 59684 · 12/11/17 10:41 · MS 2004

    정말 좋은 글입니다.
    일단 좋아요부터 눌러드립니다.
    아래 재수하지 말라는 글에서 댓글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던데.. 이 글은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제가 가장 걱정하는 바는, 오르비에서 수험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들 모두가 '학벌'이라는 것에 대한 '전혀 구체화된 것이 없는 막연한 동경'을 지나치게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 Karl Marx · 59684 · 12/11/17 10:43 · MS 2004

    오르비에 오는 수험생의 상당수가, 자신이 '왜' 좋은 학벌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죠.
    그저 주변 친구(특히 수능 대박나서 좋은 대학 갈거 같은 친구), 누군지도 모르는 오르비 사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죠.

  • BRIX · 188839 · 12/11/17 21:53 · MS 2007

    좋은 글에 좋은 댓글이네요~

  • 엔비 · 388482 · 12/11/17 13:48

    아직 학생으로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그런 생각많이드네요 대학 레벨 한두개차이로 인생이 바뀌는게 아닐텐데, 정작 그런 마음가짐이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로 만들기 십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왜 그 대학에 들어가고 싶냐고 물으면 '그래도 멋있잖아, 사람들 보는 눈이 다르잖아,' 이런 말만 돌아오고,, ; 대학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학벌문제도 서서히 사라질텐데 아직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먼 것 같네요

  • 두개골 · 299390 · 12/11/25 04:59 · MS 2009

    윽 아래글이라면 제 글을 말하시는 건가요? ^^;;
    막연한 동경..이 맞죠 ㅎㅎ 근데 그 막연한 동경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겠죠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게 학벌이라 그래요 ㅋㅋ
    저도 막연한 동경때문에 공부했지만
    지금 여기와서는 학벌이 왜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건 한국을 바꾸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ㅠ

    근데 누구랑 쉽게 비교하지 말라는 것은 공감이 가네요. 자신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쓸데없는 소모전이에요.
    절대적인 자신 위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에구..ㅠㅠ 새벽에 과제하다 말고 와서 뭐하는 건지 ㅋㅋ;;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 수능떡친다 · 407398 · 12/11/17 11:05 · MS 2012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츄리닝 · 310930 · 12/11/17 12:08 · MS 2009

    정말.. 재수를 해야만하는 당위성이 없다면 섣불리 재수를 결정하는건 잘못된 선택이 될 확률이 높다고생각됩니다..ㅠㅠ
    제가 딱 그랬거든요 .. 수개월을 혼자고민하면서 혼란속에서 헤매이다보니 정말 후회가 너무되더라구요..
    어쨋든 제가 선택한 것이었기에 끝까지 마치긴했지만.... 결과도 맘에들지않고 힘드네요.
    만약 올해 예상치못한 대학을 간다 하더라도 일단 명확한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냥 이리저리 겪어보면서 방황좀 해봐야겠어요 ㅎ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심해 · 416615 · 12/11/17 12:27 · MS 2017

    음..저는 생각이 약간 달라요. 저는 이번에 수능을 본 재수생인데요, 현역때 정신적 방황을 하다 패망한 후 내 한계에 환멸을 느끼고 재수를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저는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3월 정도까지 정신적 방황을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요. 저는 자신을 믿고 꾸역꾸역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방황이 사라지고 나름 재수를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현역 시절 나온 점수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다한들 정신적 방황으로 인해 학교에 섞이지 못했을 거 같아요. 또는 운 좋게 이름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한들 사회를 쉽게 보고 대학교에 가서 열심히 생활하지 않았을 거 같구요. 음..그러니까 저는 오르비의 많은 분들이 재수하는 이유를 학벌 때문이라고만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학벌은 부차적인 것이고 자신의 한계에 대한 싸움이 재수의 주를 이루니까요

  • 베리타스텔라 · 411601 · 12/11/17 18:58

    아 글 정말 공감이요...

    제가 하고싶은 말을 다 담아주셨네요^^

  • 대한민국루멘 · 310116 · 12/11/17 14:24 · MS 2009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글쓴이님 학원다니셨나요? (전 삼반수 생각중입니다;;)

  • Vincero · 91149 · 12/11/18 17:06 · MS 2005

    네 종합반 다녔어요 근데 9월달엔 다시 나왔어요..

  • 캬캬컄 · 370225 · 12/11/17 14:50 · MS 2011

    어떤분이말했듯...아직어린애들이 좋은대학을생각하는것은
    그야말로 선빵치는거죠...혹시모를 미래의사태에대비해 그래도 명문대라는 타이틀이도움이아예안되는건아니거든..살면서..근데 적성에안맞아 정신과치료를받는분도있군요... 저도요새 눈감고생각해보면 내미래가잘보이지않고 정확한적성을모르겟네요...이나이에ㅠ

  • 톰 리들 · 331538 · 12/11/17 17:02 · MS 2010

    슬픈 n수...

  • 뽀득이 · 398652 · 12/11/17 17:50 · MS 2011

    아 조아여

  • 연홍영가자 · 379824 · 12/11/17 18:31 · MS 2011

    딴건 모르겟는데 재수하면 자신이 큰다는걸 느낄수는 있음 ㅇㅇ

  • Cleverley · 330416 · 12/11/17 23:03 · MS 2010

    전 고민이 너무 크네요....
    고3때 제대로 조져서 건동홍 갔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반수.. 또 삼수...
    이번엔 잘나오나 싶더니 수리3점짜리 3개가 우수수....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삼수한 이유도 학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인거 같아요.. 플러스적 요인이라면 사촌이 전부 스카이출신 판검사 회계사 하고있는데.... 뭔가 인정받고싶은 느낌이랄까?? 주눅들고싶지않아서??
    정리가 잘 안되는데 아마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한거같아요
    군대 일찍 간 애들은 병장된넘들도 있고...
    나만 2년이라는 세월을 헛보낸거같고 요즘 너무 우울합니다......
    누가 저좀 구원해주실분 안계신가요?? 부모님이나 친구들 앞에서는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 도도한월아 · 407982 · 12/11/18 02:38 · MS 2012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도도한월아 · 407982 · 12/11/19 00:58 · MS 2012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Vincero · 91149 · 12/11/18 14:19 · MS 2005

    부끄럽게 조회수가 왜이리 많죠 ..ㅋㅋㅋ ㅜㅜ 궁금하신거 있음 쪽지 주세요!

  • 시행착오 · 381176 · 12/11/18 18:32

    정말 진실된 따끈한 글이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혁신투자가 · 421013 · 13/01/26 11:42 · MS 2012

    저는 댓글 같은거 안 쓰고 그냥 글만 보는 사람이였는데.. 이거는 좀..... 글쓴이의 진심이 담긴 충고와 경험담때문에 그냥 인터넷 사이트 켰다가 다시 찾아서
    지금 글을 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