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력이란 무엇인가 6편 - 자기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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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아시다시피 전 취미로 역사와 전쟁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관련 서적도 자주 찾아보고, 고대부터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외교적 분쟁과 전쟁에 대해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사를 공부하고 있으면 한 가지 중요하고 흥미로운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강대국, 선진국들 - 예컨데 과거 소련이라던지, 로마 제국이라던지, 현재의 미국, 중국이라던지 등등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보면 가히 명실상부 세계 전체를 주무르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시대의 1등 국가였음에도, 모든 땅과 나라들을 정복하고 관리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예컨데 로마도 최대 전성기에는 영국의 현재 남부 지방까지만 점령하고 통치했었습니다. 거대한 방벽 북쪽의 스코틀랜드 까지는 완벽하게 통치하지 못했습니다. 한때 고려부터 동유럽까지 폭풍처럼 몰아치던 몽골군도,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을 침공하려 했지만 태풍과 기후에 막혀서 포기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수도로부터 더 멀어진 곳을 원정하고 정복할 수록 보급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또 현장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좌천(?)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저 너머를 정복한다 하더라도 그만한 수지타산이 맞는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로마는 한때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로 시작하였으나, 최전성기에는 현재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집트, 프랑스까지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지중해의 패권자이고, 유럽 문명의 근본이 되는 국가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1%9C%EB%A7%88_%EC%A0%9C%EA%B5%AD
로마 제국 외에도 수많은 제국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정말 현대의 영토보다 훨씬 더 큰 땅을 점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더군요. "모든 제국은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과대팽창하다가 멸망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행정과 정비가 잘 된 나라여도, 지나치게 팽창을 추구하면 주변국들의 큰 저항에 부딪히거나, 내부적으로 부패하면서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에게 약한 컴플렉스를 종종 확인하곤 합니다. 한반도는 과거부터 대륙과 섬을 잇는 주요한 지역이었습니다. 과거 고조선은 한나라라는 중국의 통일 왕조에 멸망당하여 식민 지배와 비슷한 관리를 받았었고, 고구려의 멸망 후 당나라는 대동강 이북을 점령했었습니다.
한때 세계 GDP의 30%를 차지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강대국이었던 청나라는 조선을 빠르게 점령하고 왕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었고, 가장 최근에는 일본 제국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서 태평양과 중국 본토에서 기나긴 전쟁을 하다 결국 핵폭탄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것은, 이렇게 살벌하고 냉정한 국제 관계 속에서도 강대국 옆에 끼어있는 약소국이라 해서 모든 약소국이 복속되거나 멸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려와 거란이 국가적 명운을 걸었던 여요전쟁을 잠시 음미해보겠습니다.
여요 전쟁은 총 3차례 일어났으며, 1차는 혓바닥으로 적을 물러나게 하였으며, 2차에서는 양규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여 승리의 기반을 다졌고, 3차는 거란의 주력을 섬멸하여 거란의 몰락을 촉발시켰습니다.
당시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성종이라는 위인이 지배하면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송나라를 꺽으려는데 혹시 고려가 뒤통수를 칠까봐 걱정이 되어 고려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선제 공격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1차 침략은 서희가 담판을 하여, 송나라 핑계를 대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거란은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요나라와 친하게 지내겠다는 말을 믿고 땅도 공짜로 주고(강동 6주), 심지어 근처에서 고려를 괴롭히던 이민족까지 자기들 손으로 깨끗하게 정리해줍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고려는 요나라의 기대만큼 송나라와의 관계도 끊지 않고 애매한 입장을 보이자, 2차 침입을 통해 고려를 한번 혼내줄 생각을 합니다.
당시 최전성기를 맞은 요나라를 상대로 고려는 왕이 남쪽으로 피신할 정도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고려와 요나라의 국경에 위치한 흥화진을 지키던 양규가 성에서 나와서 거란에게 점령한 성을 다시 수복하고, 보급선을 흔들고 게릴라전으로 고려 백성들을 구출하고 거란군에게 타격을 입히기 시작하자 버티지 못하고 주력군은 후퇴를 하게 됩니다.
양규가 구한 고려 백성 수는 무려 3만이라고 되어 있으며, 6천명이 지키던 거란군의 보급로에 위치한 성을 단 1700명을 동원하여 함락시키고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핵심적인 활약을 합니다. 왕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주력군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급히 본국으로 퇴각하였고, 양규는 이 퇴각하던 주력군도 계속 괴롭히다가 결국 소수의 병력으로 정면 맞대결을 하여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이때 양규 장군이 구한 백성들과, 거란군에 대한 유격전으로 거란 군을 소모시킨 덕분에 3차 전쟁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고려왕 당시 현종은 양규를 개국 공신급으로 추서하며 자식들에게도 파격적인 보상을 합니다.
3차 침략 당시에는 성종이 마찬가지로 직접 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는데, 양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함부로 평야를 통해 빠르게 내달리지 못하고 산을 통해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2차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반드시 이 전쟁을 마무리 지으러 거란군이 침략해 올 것을 예상한 고려는 열심히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3차 침공이 본격되자 강감찬이 최고 사령관으로 등용되는데, 흥미롭게도 나이가 많은 문신 출신이었습니다. 대신 부관들은 무관 출신들로 채워졌습니다. 1,2차때 끝내지 못한 고려와의 전쟁을 끝장내기 위해 당시 거란 제국의 최정예 군대를 동원하였으며, 유목민족답게 다수의 기병을 끌고 옵니다.
1,2차때도 당연히 거란군은 기병을 끌고 왔는데, 중요한 건 스케일이 큰 '회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양쪽의 대군이 넓은 평야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결정적인 회전이 없었기에, 승부를 끝내지 못하고 양 쪽 둘다 미련이 남아 전쟁이 질질 끌어지고 있었죠.
2차 침략 당시에는 거란군이 양규가 지키던 흥화진은 40만의 대군으로 공격하였으나 일주일 넘게 지체되면서 결국 포기하고 고려의 깊숙한 곳으로 우회하여 들어왔고, 그것을 양규가 훌륭한 유격전으로 거란군을 괴롭혔습니다.
3차 침략에도 양규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성종은 함부로 평야를 가로질러 빠르게 개경까지 오지는 못했는데, 2차와 달리 고려 현종은 개경에서의 튼튼한 방어전을 이미 상정하고 적의 식수와 보급품이 될 수 있을만한 것은 싹 다 태워버리고 성에 단단히 틀어박혀 버립니다.
당시 거란은 2차 침략까지 주요 장교와 인재를 소실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급하게 글만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벼슬을 줘야 하는 형편이었고, 고려를 정복하지 못한다면 송나라에 모든 국력을 집중할 수 없었기에 3차 전쟁의 결과에 따라 동아시아의 판세가 결정되는 형국이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lsn76&logNo=40200077633
당시 고려군은 적의 높은 기동력을 따라잡기 위해서 따로 기병을 조직하고, 거란군을 추격하여 소모시키기도 합니다. 빠르게 침투해오는 거란군을 곧장 고려군 기병 1만이 추격했고, 보병은 평야를 따라서 개경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아래쪽으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튼튼한 개경의 방어력에 거란은 큰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빠르게 개경을 점령하기 위해서 중간 약탈도 없이 산을 통해 심각한 체력 소모를 감수하고 왔는데, 이제 시간을 끌면 고려 주력 보병과 정예 기병에게 따라잡혀서 개경이라는 성을 앞두고 3면에서 포위될 위기였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압록강 얼음이 녹고 있었기에, 승리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꼼짝없이 고려에 갇힐 위기였습니다.
나름 빠르게 눈치를 챈 거란군은 곧장 후퇴를 하기 시작하였고, 다시 고려군은 이들을 섬멸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따라갑니다. 원래 전쟁에서 양 측 군대가 정면에서 맞대결을 벌인다면 완전한 전멸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후퇴를 한다고 진형을 무너뜨리고 허겁지겁 달리는 순간 그 군대는 기습과 공격에 매우 취약해집니다.
결국 귀주 벌판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과 집으로 돌아가려는 거란군이 서로를 마주한 맞대결, 대규모 회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때 고려군은 20만이었고 거란군은 10만이 살짝 안되는 규모였는데, 문제는 병사의 질이었습니다. 고려군은 가능한 모든 병력을 싹 다 긁어모은 것이 20만명이었고, 거란군 10만은 기병을 위주로 한 정예 부대였으며 왕을 호위하는 유명한 천운군과 우피실군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고려군이 나름 선전하였으나 역시 벌판에서 대규모 회전은 유목민족의 역량을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뒤늦게 도착한 고려 기병대가 거란군의 뒤를 급습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고, 샌드위치를 당한 거란군에게 고려 보병이 강하게 위에서도 압박하면서 거란군은 혼란에 빠져 모두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전열이 무너지며 후퇴를 하기 시작하자 고려군은 끝까지 쫓아가서 최대한 많은 거란군을 요격합니다. 전쟁에서 당연한 것이 적을 쉽게 후퇴하게 보내주면 다시 쳐들어올 확률이 높고, 이때 공포심과 좌절감을 각인 시켜야지 다시 쳐들어올 생각을 못하거든요.
얼마나 크게 이겼던지 여태 승리를 단순히 '물리쳤다, 승리하였다' 라고 표현하던 것을 이 전투에 대해서는 '거란군이 이렇게까지 크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거란군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고작 수천명이 도망갔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서 다시는 거란은 고려를 넘보기는 커녕 주력군을 잃으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빠지게 되었고, 송나라 - 요나라(거란) - 고려로 이루어진 3개의 축이 맞물려 평화가 찾아옵니다.
당장 여요전쟁을 예시로 든 것처럼, 약소국의 생존에서 중요한 것은 '약소국의 힘이 강대국보다 약하다'라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가 약소국임을 아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거란은 당시 최강대국이었고 1,2차 전쟁에서 성공적으로 거란에게 소모전을 강요했고, 그러한 부분들이 누적되어 결국 거란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돌아옵니다.
국가가 전쟁을 벌임에 있어서도 자신의 국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전쟁인지, 전쟁 중이라도 더 이상 국력의 한계가 드러나는지를 명확히 스스로를 알고 있는 국가들은 적당한 출구전략을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거란같은 거대한 강대국, 제국들은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며 무리한 팽창을 벌이다가 멸망을 재촉했죠.
꽤 유행한지 되었지만 '메타인지'라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게 시키는데, 중요한 것은 영어 단어를 얼마나 많이 외웠냐보다도 자신이 '얼마나 외웠는지 정확하게 몇 개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들이 오히려 공부를 더 잘한다고 들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분명히 알고, 수학이나 과학에서 특정 유형을 내가 제대로 풀지 못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만 한다면 충분히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스스로의 주제 파악을 잘 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재수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저 스스로에 대해서 잘 몰랐고 그 때문에 성적이 항상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관찰하고, 그들의 공통점을 스스로와 비교해보니 뚜렷하게 차이점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을 흉내내고 따라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수학을 잘 하는 것도 '수학적 머리가 뛰어나게 타고난' 학생들도 있지만, 저처럼 뒤늦게 알게 된 학생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못하고 잘하는지, 또 어떤 부분에서 잘 못하는지'를 정확히 표현하고 구분할 수 있는 학생들이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국가의 생존도 결국 스스로의 국력의 한계와 장점을 명확히 파악하면 약소국이더라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도 마찬가지더군요. 보통 공부를 무작정 생각 없이 많이 하다보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생각을 하고 나 스스로가 어느정도 수준인지 정확하게 인지한 사람들이 한계를 극복하고 성적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능력과 재능의 부재에 책임을 전가하지만, 사실 이렇듯 메타인지, 스스로를 잘 파악하기만 하면 충분히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가 진정 무엇인지 잘 모르고 하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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