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공 [521651] · MS 2014 · 쪽지

2015-06-28 20: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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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존재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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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와서 오르비 눈팅이나 하는 눈팅족인데 종교관련 글 올라와서 오랜만에 글 써봐요. 학교 교양강의에서 배웠는데 써먹고 싶어서요 ㅋ


먼저 종교를 가지는 것, 또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라는 주장에 대해 이야기 해볼꼐요.

첫째는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 주장이 참임을 증명해야하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건 종교인의 몫이고, 비종굥인에게 신의 비존재를 증명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토론이나, 법정에서 쓰이는 일종의 불문율이지 이것은 신의 존재/비존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자기네들 주장대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참인 믿음만을 가지려면 또 그 믿음이 신의 비존재를 포함하는 믿음이라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해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둘째, 위의 내용에 이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여러가진 논변이 여러가지 존재하고, 신의 비존재를 증명하는 논변도 여러가지 존재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신의 존재/비존재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셋째, 보통 무신론자/비종교인들의 주장처럼 어떤 믿음 가지기 위해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그 믿음이 참이라고 받아드릴만한 합리적인 근거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한합리주의'라고 합니다. 하지만 철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전제'없이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습니다. 강한합리주의자들은 이성이 이런 논쟁에서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몇가지 전제들은 참이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논리를 전개하게 됩니다. 실제 합리성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물리학마저도 몇가지 대칭성을 전제로서 받아들입니다. 예를들어 어제의 물리 법칙이 내일 변하지 않을거라는 것도 그런 것들 중 하나입니다. 이를 시간 대칭성이라 부르는 걸로 아는데, 시간대청성을 참이라고 생각할 어떤 선험적인 근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한 합리주의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한 '신앙주의'라는 입장 역시 존재합니다. 결국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어떤 종교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이성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논변과 그 논변의 허점을 밝히는 새로운 논변, 새로운 주장들이 나올 것이고, 결국 이러한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종교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따지는 일은 이 종교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무한정 연기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따라서 종교적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종교적 비약'을 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기독교로 치면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존재가 초월적이고, 선하며, 전지, 전능함을 받아들이는 '논리적 비약'을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수학으로 치면 '공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근본적인 믿음이므로, 이것을 이성으로 평가하는 작업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신앙주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방패로 쓰일 수 있는 좋은 논리입니다. 하지만 신앙주의가 믿음을 방어하는 '방패'는 될지 언정, 절대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는 '창'의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 입장에선 세상에 수십, 어쩌면 수백 수천 가지의 종교가 있을 수 있는데, 이 여러가지 종교 중 도대체 '어떤 종교로 비약'해야하는지 알려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보편적으로 이단으로 알려져 있는 모든 종교가 각자의 교리를 방어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 입장에선 '강한 합리주의'가 종교가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신앙주의'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적어도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과 철학자들의 입장에선 양쪽 다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입장을 취합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과학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보단 '사람을 신뢰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다양한 '논리적 비약'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식을 낳을지 말지를 선택할 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 때, 우리는 모두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어떠하다'등의 전제를 받아들이고 행위합니다. (흔히 생기는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갈등이 부모와 자식이 각자 받아들이는 전제들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전제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모든 전제들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낳는 것은 모두 개인이 각자의 전제를 바탕으로 행위하지만, 그 과정에서 '합리성'을 잃어선 안되는 중요한 일들입니다. 즉, 비판적 합리주의는 어떤 종교적 믿음체계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참이라는 결정적인 증명은 불가능 하더라도, 그 믿음 체계들이 합리적인 기준으로 비판 받을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는 입장입니다.
종교는 절대 과학이론이 아닙니다. 이론으로 치자면 천부인권설, 사회계약론, 롤스의 정의론 등의 정치철학, 윤리철학에 가깝고, 일상생활에 비유하자면 기독교인들이 '그 분'을 믿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신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어떤 종교가 참이라는 결정적인 증명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어떤 종교는 아니라고 반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서로 모순되는 교리가 한 종교 안에 동시에 존재 한다던가, 우리가 보편적으로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사실들과 충돌한다면 그 종교는 믿을 수 없는 거짓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종교가 답하려는 근본적인 질문인 삶의 목적에 얼마나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하는지도 그 종교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렸을 땐 기독교, 중학교 쯤 천주교 현재는 종교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넷상에서 종교 이야기만 나왔을 때 별로 영양가 있는 주장들이 오고가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몇몇 성경적 직해주의(성경에 나온 말들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자들이 대다수의 강한 합리주의자들의 분노를 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차라리 강한 합리주의자들은 종교에 있어서 '근거가 없음으로 믿을 수 없다'는 일관된 주장을 하지만, 성경적 직해주의자들은 성경이 왜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인지에 대해서는 '신앙주의'로 일관하면서 유독 '진화론'과 '빅뱅이론'에 대해선 '강한 합리주의자들'의 입장을 빌려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지적설계론'이나 '창조과학'에 대해선 다시 '신앙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믿음을 고수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신앙이이든 신앙인이 아니든 자신의 입장이 어디 쯤인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때 그때 들어오는 비판을 받아치기 위해 아무 '그럴 듯한'말이나 갖다대는 것은 올바른 지성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특히 직해주의자들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제가 알기로 직해주의는 '이단'이고, '비판적 합리주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믿음입니다. 제 아버지가 천주교 신자시고, 신학을 좀 공부하셔서 공부하시는 책을 펴보니 첫 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오는 3가지 버전의 창조'입니다. 창세기엔 몇장에 걸쳐서 3가지 버전의 창조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세가지 다 각자의 시나리오가 있고, 6일만에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또 성경에 등장하는 각종 모순들, 구약성서에서 '선하신 하나님'이 비유대인에게 내린 끔찍한 벌들, 일부다처제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고 넘어가는 모습들을 '직해주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비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직해주의자'들이 던지는 진화론에 관한 비판 역시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생물 관련 전공자는 아니지만 몇가지 대표적인 '창조과학'론 주장에 대해선 반박할 수 있습니다.정말 진화론이라는 거대한 이론 전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싶고, 이것이 거짓임을 증명하고 이러한 증명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참이라고 받아들여질 만한 새로운 대안가설이 존재한다면 생물학과 가셔서 논문 내세요.

그리고 수헙생 여러분,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다'와 '공부를 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거 볼 시간에 공부하세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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